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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산행노트

광덕산 산행

걷고있는 찌꺼 2019.02.21 08:30

천안의 광덕산을 찾은 건 2017년 3월 말, 아버지께서 두번째로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간 뒤였다. 처음 응급실에 가셨을 때와 달리, 두 번째에 지나지 않는데도 식구들은 모두 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어버지 당신도 가족들도 조금씩 아버지의 병환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일상은 그렇게 이어져 갔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나는 ‘광덕산’으로 향했다. 천안에서 광덕산으로 올라가 온양으로 내려오는 것이 계획이다. 아버지의 산행정보에 의하면, '정상에서 마실쪽으로 내려가려면 정상부근에 급경사가 있어서 조심해서 산행을 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아버지께서 광덕산을 찾은 건 1996년이니,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런데 광덕산 입구에서 만난 광덕사 일주문은 아버지가 산악회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했을 때와 전혀 달라보이지 않아, 반갑기까지 했다. 처음 와보는 장소인데, 공연히 반갑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와 친구분들처럼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속에 계셨던 분들은 많이 돌아가셨다. 현재 살아계신분들도 아버지처럼 다들 건강이 나쁘다는 소식들뿐이다. 나혼자 덩그러니 일주문 앞에 서 있자니, 세월의 흐름이 더 실감났다.

산을 오르기 전에 광덕산 자락에 있는 작고 고요한 ‘광덕사’를 구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산자락에 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절인 것 같다,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역사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경내가 더욱 진지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 절에서는 목소리조차 크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광덕사를 둘러보다가 뜰 한켠에서 어처구니 없이 몇 겹으로 얹어 놓은 맷돌들을 발견했다. 쓰다가 던져 놓은 듯한 맷돌은 어찌나 닳았던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요즘은 이런 데에 더 눈길이 머문다. 역사적인 유물보다 쓰던 멧돌이나 돌덩이들을 뚜벅뚜벅 쌓아놓은 이런 물건들! 오래된 그 자체로 유물이 되어버린 그런 물건들…



아버지의 인생이 다해간다고 생각되는 어떤 날부터 부쩍 이런 물건에 눈길이 머물렀다. 거대하고 화려한 국보급 탑보다 이름없는 맷돌탑에 더 애뜻한 마음이 깃드는 것이다.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소위 성공한 삶을 살지도 못하셨고, 엄청난 부를 획득하지도 못하셨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좌절을 겪으며 고단한 삶을 사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지 않으셨다는 것, 식솔들을 위해 힘에 부치는 노동을 하시며 거대한 인생의 물결을 헤쳐나오신 것만으로도 훌륭하게 참 잘 사셨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인생을 값지게 생각하고 이런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 것은 부끄럽게도 최근의 일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무능하고 답답한 양반이라고, 원망을 더 많이 했더랬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고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애를 쓰시며 힘들게 사셨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아버지의 인생은 소박하기만 한 이 맷돌탑을 닮았다.

그렇게 산자락에서 노닐다가 덜렁덜렁 산으로 올랐다. 광덕산은 주변에 한눈을 팔면서 천천히 올라가도 될 만큼 야트막한 산이다. 광덕산을 갔을 때는 막 산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봄이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산에는 습기를 가득 머문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다. 아직 새잎이 나지 않은 이른 봄이었는데도 산에 안겨 있는 듯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광덕사에서 시작하는 광덕산 산행길은 볕이 잘 드는 산허리를 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군데군데 산소들이 눈에 띈다. 죽어서 이렇게 산에 누워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산길에 불현듯 만나는 산소가 무섭거나 당황스럽지 않고 반가웠다. 마치, 인적드문 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듯한 반가움을 주었다. 광덕산의 무엇이 이렇듯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하산길로 택한 아산 방향의 광덕산 다른 쪽 경사면은 천안쪽 광덕산과는 영 다른 느낌이다. 구비구비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고개들이 키큰 소나무들과 함께 지루할 정도로 계속된다. 힘든 큰 고개를 하나 넘고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다시 작은 고개가 나타났다. 함께 동행한 친구는 애초에 이 고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단다. 내가 알면, 이 길로 하산을 하지 않겠다고 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해 주었는데, 나는 친구에게 « 참 잘했어! 분명히 그랬을 거야! »했다.

산에는 무조건 오르막만, 내리막만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산을 오르고 산을 내려온다. 그래서 오르막에 접어들었을 때도, 내리막을 만났을 때도 너무 한탄하거나 쉬이 좋아해서는 안된다. 50여년을 살아보니, 인생도 꼭 그러하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에서도 이제 더는 숨이 차서 못 올라가겠다고, 꼭 주저 앉고 싶을 때는 놀랍게도 내리막이 나타났다. 반대로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지점에서는 어김없이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났다. 그래서 발을 척척 내 닿을 수 있는 내리막이 나타났다고 너무 좋아해서는 안된다고, 골이 너무 깊으면 그만큼 다시 올라갈 높은 산고개가 나타난다는 걸, 그걸 가르쳐 준 것은 산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인생의 어느 산마루를 걷고 계신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광덕산의 긴 하산길도 금방 지나왔다.


광덕산 산행Tip

광덕산은 천안과 아산에 걸쳐있는 산이다. 천안코스는 광덕사 쪽에서 오르는 길로, 자녀들과 함께 즐길 수도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등산로이다. 그러나 어린이들과 함께 갔다면, 산고개를 넘지 말고 회귀산행을 하길 권한다. 광덕산 정상에서 아산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경사로는 아무에게도 권하고 싶은 코스가 아니다.

광덕산 정상아래 가파른 오르막만 제외한다면, 아산 쪽 광덕산은 키큰 소나무가 빽빽한 무척 아름답고 걷기 좋은 코스이다.  아산쪽에서는 소나무들이 절경이다.  산마루마다 앉아서 솔향기를 즐길 수 있도록 벤치도 잘 갖춰져 있다. 광덕산은 천안이나 아산, 어느 쪽에서든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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