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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산행노트

소요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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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7년 2월에 쓴 것입니다.



아버지의 산행기를 따라 산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소요산'이다. 소요산을 첫 산행지로 선택한 것은 아버지가 다녀오신 산들 중, 지하철만 타고도 갈 수 있는 몇 안되는 가까운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요산이 위치한 동두천은 결코 가깝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북쪽을 향해 한참을 올라갔다.

공기도, 바람도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단순히 기분이었을까? 소요산에서 찍은 아버지의 단체사진 속에는 1995년 12월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겨울이 지나기 전, 아버지처럼 겨울의 소요산을 보고 싶었다. 아니, 소요산 겨울풍경을 아버지께 다시 보여드리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고 부지런을 떨며, 소요산을 찾은 건 지난 2월 중순이다.

소요산을 찾기 며칠전, 아버지는 토혈을 하셨고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이 사건은 아버지 평생 처음있는 일이었고, 너무 건강하셔서 90세는 물론, 100세도 사시겠다고 믿던 가족들에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조직검사를 통해 ‘위암’을 진단받았다. 아버지는 수술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항상 오래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께서 위암진단을 받고는 « 살만큼 살았다! » 하셨다. 

나는 더 미룰 수 없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드렸다. 

« 아버지, 만약에 아버지가 너무 위독해져서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인공호흡기나 영양튜브 같은 것을 꽂아드릴까요? »

아버지는 그 질문에도, 단호하게 « 싫다!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만 사시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아버지와 이별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요산 지하철역에서 내려, 키큰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소요산입구'를 거쳐, 산자락에 있는 '자애암'까지 지나서야 본격적인 소요산 산행이 시작된다. 산마루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계단을 채 몇 발짝 오르지 못하고 점퍼속에 입은 보온용 자켓을 벗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그저 발아래 놓인 계단만 바라보면서 쉼없이 올라갔다.

아버지도 이 계단을 나처럼 숨차게 올라가셨겠지? 이제 곧 첫 440m 고지에 있는 첫 산마루(하백운대)가 나타날 것이다. 아버지가 오셨을 때는 높은 데는 계단이 없었겠다 싶게, 높은 곳의 계단은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어 보였고, 그 근처에는 예전에 썼을 것 같은 밧줄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드디어 하백운대에 도착했다.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춘 하백운대에서 걸어온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병풍처럼 반원을 그리며 둥글게 펼쳐진 소요산의 '나한대'와 '의상대'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골짜기까지 산새가 잘 드러나 있는 겨울 소요산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면서 '이런 풍경 때문에 소요산을 경기도의 금강산이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걸어온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지 않으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늘 쉼없이 걷다가 문득 멈춰 뒤돌아 보았을 때, 발견했던 것 같다. 하백운대에서 본 소요산의 풍경도 꼭 그랬다. 아버지도 나처럼 이 풍경을 보시며 감탄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물도 한모금 드셨을 것이다. 나도 물을 한모금 마시며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를 바라보면서 이 풍경을 아버지께 보여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즐거워하실 아버지를 떠올리다 입가에 미소가 번져, 마시던 물을 흘릴 뻔 했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인생에서도 잠시 멈춰서 뒤돌아봐야 할 때가 있다고,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면 귀한 순간을 놓친 채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소요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능선 위로 바람이 인다. 귀밑을 예리하게 긁는 바람, 눈물이 날 것 같은 시린 바람이다.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소요산 산행 Tip

하백운대에서 중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은 능선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나한대와 의상대를 한동안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다. 또 상백운대를 지나면, 거대한 편암들이 칼날처럼 줄지어 세워져 있는 '칼바위능선'이 나타난다.

칼바위능선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어울려 있는 모습은 마치 먹으로 그린 산수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소요산에서 칼바위능선을 보지 않는다면, 소요산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칼바위 능선은 너무 아름답다.

칼바위 능선을 지나면 나한대와 의상대로 향하는 길이 나타나지만, 거기서 하산할 수도 있다. 바로 선녀탕으로 향하는 골짜기길이다. 그 길은 경사가 급한 계곡을 끼고 나 있었다. 2월에도 눈이 녹지 않은 추운 골짜기였다. 소요산을 겨울에 간다면, 그때가 2월일지언정 아이젠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겠다. 나는 아이젠을 챙기지 않아, 엉금엉금 기어서 경사 급한 산을 겨우 내려왔다.ㅠㅠ 겨울에는 선녀탕 골짜기로 올라가서 계단이 잘 놓인 하백운대쪽으로 내려오는 것도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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