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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여행

아프리카소년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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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렌(Rennes)의 우리 동네, 한 폐허가 된 공장건물 벽에는 한 아프리카 소년과 코끼리가 그려진 낙서화가 있었다. 나는 이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저녁에는 동네 둘레길을 산책하곤 했는데, 한참 동안 이 그림을 보면서 걷는 것이 좋았다. 방책으로 둘러진 산책로를 따라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소년으로부터 멀어져 하염없이 걸었다. 그런 산책길에 소년은 길동무 같은 존재였다.

그림속 아프리카 소년의 슬퍼보이는 큰 눈에서 시선을 쉽게 거둘 수 없었다. 이 그림은 그저 거리 예술가들이 그린 낙서화에 불과했다. 언젠가 사라질 거라는 사실 때문에 더 애뜻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년은 내게 사라짐의 미학을 생각하게 한 존재이기도 했다.

당시 머물렀던 렌은 시 차원에서 낙서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도시로 유명했다. 렌 시는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낙서화가들과 그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 둘러지는 안전막이나 철길가 후미진 벽과 강가의 음침한 둑엔 낙서화들로 꾸며졌다. 폐허가 된 거대한 공장건물 외벽에도 어김없이 낙서화가 그려졌다. 이 그림들은 쉼없이 새 그림으로 덮히기도 하고 또 공사가 끝나면 사라지기도 했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림이라도 영원히 존재하는 법이 없었다.

‘모든 사라져버릴 것들은 아름답다.’

아프리카 소년이 그려진 이 그림도 비워진지 오래된 공장 건물에 그려진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한낮에는 동네 둘레길을 결코 산책하지 않는데, 그날은 갑자기 대낮에 산책이 하고 싶었다. 그런 나 자신에게조차 신기해 하며 산책로로 나갔다.

그런데… 마침 바로 눈 앞에서 이 공장 건물이 철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철거되는 과정이라지만, 이미 공장 외벽은 모두 해체된 뒤었다. 소년은 더 이상 내 눈앞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의 기분이 이런 거겠구나! 가슴 저 깊은 구석에서 밀물처럼 넘실대는 역한 울렁거림이 일었다. 철거현장이라도 본 것이 다행이라고 애써 위로를 했다.


아프리카소년이 그려져 있는 공장건물의 철거 현장


이날 나를 부른 건 소년이었을까?

소년과는 그렇게 작별을 했다.

"안녕!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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