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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나지 알 알리의 '한잘라'(Hand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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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의 벽화는 프랑스의 '모를레'(Moraix)라는 도시를 여행할 때 본 것이다.
뒷짐을 지고 있는 저 소년은 '한잘라'(Handala)이다.
한잘라는 '나지 알 알라'(Naji Al Ali, 1937~ 1985 )라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만화가에게서 태어난 아이이다.
한잘라를 거리에서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의 상징이다.
머리는 헝클어진 더벅머리에 기운 옷을 입고 있는 이 아이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소년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 위 그림처럼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인데, 아주 드물게 돌을 던지기도 하는 등, 저항하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

나지 알 알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지도자들, 즉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 등의 지도자들 또한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잘라는 이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의 한 상징이었던 셈이다.
한잘라는 이름의 뜻이 아랍어로 '쓰라림'(Bitterness)을 뜻한다고 한다.

나지 알 알리는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정신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1985년 런던에서 팔레스타인 저항활동을 하던 중 한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아직도 테러리스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잘라는 나지 알 알리의 죽음 이후에도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어 존재해왔고 이렇게 오늘날까지 살아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모를레에서 한잘라를 볼 수 있을 만큼 그는 국제적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브르타뉴 역시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피지배적인 요소를 모두 해소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독립운동을 꾀했던 사건들이 있었고 여전히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모를레'는 그 저항의 중심에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한잘라를 만나게 된 것이 꼭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한잘라 그리과 함께 모를레에서 본 포스터이다.

'브르타뉴의 재통합을 위한 집회, 그리고 결정할 권리!'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2018년 12월 8일 렌에서 모이자고 써있다.

1400 몇 년도인가, 안느공작이 프랑스 국왕과의 결혼으로 브르타뉴가 프랑스에 복속된 이래, 민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브르타뉴지방은 프랑스에서 가장 허드렛일을 담당해왔다.

산업화 시기에는 노동자와 가정부 일을 하기 위해 젊은 남녀들이 도시로, 도시로 떠났고, 현재도 농산물과 축산물을 프랑스 전역에 보급하는 곳은 브르타뉴지방이다.

사실, 위 포스터의 주장처럼 될 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며, 극단적인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브르타뉴에 살았을 때, 든 생각은 이 지역 사람들은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은 브르타뉴인이라는 정체성보다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에 더 긍지를 느끼는 것 같았다.

현재는 프랑스와 잘 결합되고 흡수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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