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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저 너머에 두고온 것이 너무 많아! 프랑스 북부 앙블르퇴즈 해안에서 들뜬 마음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바다에 가 볼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버스로 한 20분만 달려가면 그 세계적이라는 지중해가 펼쳐지는 도시에 살면서 그곳을 찾은 건 한 달이 훨씬 지나서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름의 그저 평범한 해안이었건만, 바다를 대하고 섰을 때서야 다리에 힘이 풀리며 우루루 무너져 내렸다. 너무,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가는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두고온 것들을 생각했다. 기꺼이 손을 놓은 것들, 그렇게 돌아서 한번도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던 것들... 그 뒤로도 유학 생활은 참으로 즐거웠다. 그곳의 생활과 공부는 내게는 여행 같았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바닷가에 설 때면,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나 바다는.. 더보기
추억의 향나무 조각 이 나무 조각은 향나무이다.사진상으로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사실 이 조각들은 아주 작은 것이다. 20여년 전 프랑스에서 유학을 할 때,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 할아버지께서 들일을 하러 가셨다가 잘라다 주신 선물이다."찌꺼야! 향을 맞아봐~ 향이 너무 좋지?" 하시며, "네게 주는 거다." 하셨다.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이 나무조각을 받아 바로 냄새를 맡았다.한번 숨을 "움~"하면서 들이마시면서 금방 '향나무'라는 걸 알았다. 아마도 당시 할아버지는 내게 향나무의 불어식 이름을 말씀하셨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당시에도 지금도 나는 향나무의 불어식 표현은 모른다.다만, 너무 반가운 표정으로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안다는 표현을 했고 내 표정 속에서 할아버지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나무라는 걸 아셨을.. 더보기
추억의 창문이야기 창, 꼭 한 해를 살았던 남불의 내 작은 방에는 발밑까지 내려오는 큰 창이 있었다.그 창을 통해선 먼 발치 언덕 위, 아름드리로 서 있는 큰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덧창을 설컹이는 미스트랄 속에서 휘휘 소리를 내며 출렁이는 소나무를, 나는 닫힌 창에 머리를 박고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리고 꼭 8개월을 살았던 북불의 한 기숙사, 내 방 작은 창으로는 이웃집 검은 양철지붕이 내려다 보였다.비가 개고 햇살조차 물빛을 띠며 투명하게 빛나는 맑은 오후면, 그 지붕 위로 젖은 몸을 말리러 비둘기들 찾아오고...그 해 늦은 가을, 비바람 속에서 이웃 플라타너스, 잎 몇 장 창 앞으로 날아왔었지.그들이 그해, 그 높은 기숙사 방으로 나를 찾아온 유일한 손님이었다. 그리고 3년을 살았던 한 단독주택 넓은 부.. 더보기
여행객의 가방 -프랑스 라곶(Pointe du Raz)에서- 나는 물건이 너무 많다. 필요한 물건은 물론, 필요할 것 같은 것에서 신기한 것까지... 조금이라도 흥미가 가는 물건이 있으면, 거의 사는 편이다. 그래서 서랍, 찬장, 창고 등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내 태도가 시험 받을 때가 있는데, 바로 여행을 할 때이다. 여행을 할 때는 갖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없다. 게다가 짐을 지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있는 것조차 덜고 싶은 심정이다. 작고 소소한 기념품이라도 살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그래서 여행이 좋다. 등에 한봇짐 짊어지고 다니며, 사람이 살기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너무 마음에 드는 것을 놓고 뒤돌아서는 법을 배운다. 더보기
죽은 자들과 함께 -파리 페르라세즈 묘지-도시에서 묘지는 마치 섬같은 곳이다. 그 도시가 관광으로 유명한 곳이라면, 더더욱 적막 속에 오롯이 떠 있는 섬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여행을 하면서 묘지를 구경하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늘 묘지를 찾게 된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도 가고, 특별한 풍광 때문에 찾기도 하고... 한번은 건강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는 성녀의 무덤가 흙을 푸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묘지도 여행 중 꼭 들르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죽은자들 곁을 거닐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렇게 넓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적막하기만 한 무덤, 그들 곁에서 죽음이 주는 평화는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적막한 평화... 더보기
시어머님의 선물 옛날 이혼하기 전,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인도네시아 여행 길에 내게 사다 주신 컵받침들이다. 천연소재 잎에 헝겊을 더해 짠 것인데, 여름에 물이 뚝뚝 흐르는 시원한 음료를 받치기에 너무 좋다.쏙 마음에 드는 무늬는 아니지만, 그 지역 전통적인 문양이 지금은 그 자체로 개성있어 좋다.당시, 정말 많은 것을 내게 선물로 사다주셨는데, 이혼하는 과정에서 다 흐트러지고 어떻게 이것들만 내 수중에 남았다.지금은 그분과의 추억으로 잘 간직하고 있다. 좀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한다.10여년 전에 돌아가신 그분을 이혼한 뒤에는 한번도 뵙지 못했다. 세월이 약이란 말이 맞다. 이혼한지 20년이 넘으니, 상처보다도 좋았던 기억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지금쯤이라면, 옛날 얘기하듯 지난 이야기를 .. 더보기
광덕산 산행 천안의 광덕산을 찾은 건 2017년 3월 말, 아버지께서 두번째로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간 뒤였다. 처음 응급실에 가셨을 때와 달리, 두 번째에 지나지 않는데도 식구들은 모두 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어버지 당신도 가족들도 조금씩 아버지의 병환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일상은 그렇게 이어져 갔다.그리고 계획한 대로 나는 ‘광덕산’으로 향했다. 천안에서 광덕산으로 올라가 온양으로 내려오는 것이 계획이다. 아버지의 산행정보에 의하면, '정상에서 마실쪽으로 내려가려면 정상부근에 급경사가 있어서 조심해서 산행을 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아버지께서 광덕산을 찾은 건 1996년이니,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런데 광덕산 입구에서 만난 광덕사 일주문은 아버지가 산악회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했을 때와 전혀 .. 더보기
선사시대유적을 찾아가는 길 프랑스의 브르타뉴지방에는 선사시대 거석 문화유적이 많다.사진 속의 이 거대한 돌은 돌드브르타뉴에 있는 선돌로, 나는 이 돌을 보기 위해 인적 드문 차도를 한참 걸었다.누가? 왜 이곳에 이렇게 거대한 돌을 가져다 놓은 걸까?가끔 아주 오래된 문명 이전에 형성된 유적 앞에서 현기증을 일으킬 때가 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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